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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교육의 역사를 만나보세요

개교 100년의 역사

도천초등학교

학교개관 도천초등학교

1진해공립심상고등소학교(鎭海公立尋常高等小學校)

1조합 학교기 : 현동심상고등소학교(縣洞尋常高等小學校)-진해심상고등소학교
  • 1911년 10월 11일 현동학교조합의 총회 후 현동심상고등소학교의 창립을 결의하고, 10월 20일 학교 설립을 인가하였으며, 12월 16일 조선총독부로부터 정식 설립인가를 받았다.
  • 1912년 1월 4일 임시교사로 사용할 구 해군임시건축지부 부지(海軍建築地部跡)에 대한 임차(貸下) 인가를 받고, 1월 10일 학생 166명이 교직원 3명과 함께 현동심상고등소학교 개교식(초대교장 財滿直一)을 하였다.
  • 1월 1일 창원군 웅중면과 웅서면이 진해면으로 바뀜에 따라 1월 19일 교명을 진해심상고등소학교로 변경하였다.
2관제학교기 : 진해공립심상고등소학교(鎭海公立尋常高等小學校)
  • 1912년 4월 1일 관제 개편에 따라 교명을 진해공립심상고등소학교로 변경하였다.
  • 11월 28일 교기를 제정하였고, 12월 3일 현재 위치에 신축교사를 준공(7일 준공식)하여 이전하였으며, 1917년 10월 22일 첫 교가(校歌)를 제정하였다.
  • 1930년 3월 10일 육군기념일에 진해만요새사령부에서 활동사진 관람 중 발생한 대화재(椿事)로 본교 아동 57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망자들은 장례를 치른 후 북가(北街)의 덕환관음사(德丸觀音寺)에 안치하였다.
  • 1934년 2월 10일 신축강당 준공식을 가졌고, 1935년부터 고등과에 한해 소수의 조선인 생도를 입학시험을 거쳐 입학시켰다.(1935년도 3명 입학)
3진해제일공립심상고등소학교(鎭海第一公立尋常高等小學校)

1938년 4월 1일 조선교육령 개정에 따라 교명을 진해제일공립심상고등소학교(鎭海第一公立尋常高等小學校)로 변경하였다.

4진해제일공립국민학교(鎭海第一公立國民學校)

1941년 4월 1일 국민학교제 실시에 따라 교명을 진해제일공립국민학교(鎭海第一公立國民學校)로 변경하였다. 1942년 5월 28일 풀(25m 5레인)을 준공하였다. 개교 이후 교장 11명이 재임하는 동안 초등과(일본인 자녀만 취학)는 총 34회 2,903명, 고등과는 총 33회 1,929명 등 4,211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2도천초등학교사(道泉初等學校史)

1진해제일공립국민학교(鎭海第一公立國民學校)
  • 1945년 광복이 되어 미군정청의 학교재개령에 따라 9월 28일 본교의 초대교장(겸임)으로 진해경화공립국민학교장 河昌洙가 부임하였다. 10월 30일 하창수 교장 과 동교 훈도 朱基榮이 진해학교조합 대표로 부터 본교의 교지, 교사, 비품 등을 인수하였다.
  • 10월 31일 도불산(현 태백산) 이서(以西) 지역의 학생 462명을 훈도 5명이 인솔하여 진해제일공립국민학교의 개교식을 실시하였다.
2도천초등학교(道泉初等學校)

1946년 2월 28일 제2대 金榮弼 교장(겸임)이 부임하여 일제 잔재인 교명 변경을 추진하여 5월 31일 진해도천공립국민학교(鎭海道泉公立國民學校)로 교명이 변경되었고, 제3대 주기영 교장이 본교 전임으로 부임하여 6월 29일에 제1회 졸업식(졸업생 111명)을 거행하였다. 동년에 첫 교기(도안 金周錫), 1947년에 교가(작사 주기영, 작곡 李相根)를 제정하여 교풍을 수립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9월부터 1953년 1월까지 학교의 전부 또는 일부를 육군과 해병대의 부대에서 사용함에 따라 시내의 대용교실에서 공부를 계속하였다. 1954년 4월 1일에는 3년제의 진해도천공민학교(鎭海道泉公民學校)를 부설하여 취학시기를 놓친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였고, 1964년 2월 폐교할 때까지 총 8회 136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61년 3월 31일 이전 진해신사 부지에 중평분교장(中坪分敎場)이 개교하여 1962년 3월 1일 남산국민학교(南山國民學校)로 승격, 분리되면서 급증하는 취학 아동을 분산시킬 수 있었다. 증가하는 아동 수용을 위해 교사(2층 12교실)의 신축(1966.10.26.~1967.4.22.)과 15교실의 증축(1967.5.2.~1965.6.26.)을 하였다. 1968년에는 영양급식소를 설치하여 희망자를 대상으로 제빵급식을 실시하였다.

이렇듯 광복 이후 약 40여 년간은 앞선 교육시설과 학부모의 적극적인 협조, 해군 측의 지원 등에 힘입어 본교가 명성을 떨친 시기였다. 각종 학예행사와 체육대회 등에서 항상 앞선 성적을 거두었고, 문교부와 도교육청 등의 연구학교도 계속해서 맡으면서 ‘경상남도 1번지 학교’라는 애칭으로도 불렸다.

1995년 10월 1일 본교어린이방을 개원하여 2개 반으로 운영하다 2000년 9월 1일 병설유치원으로 승격, 개원(1학급)하였다.

1996년 3월 1일 도천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알찬 교기 육성으로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1987년 탁구 여자부(단체), 2007년, 2012년, 2018년 유도 남자부(체급) 경기에서 각 1위를 차지하였다.

광복 이후 제33대 교장(권영창) 재임 시까지 총 74회 19,734명이 졸업하였다.1)

  • 개교 때 가교사(1912년)
  • 신축교사(1913년)
  • 제1회 졸업(1946.6.29.)

1) 참고문헌 : 1. 박건춘. 계간진해 제89호. 도천초등학교 새 백년의 좌표. 2015 2. 박건춘. 도천초등학교실록(1911-201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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