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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교육의 역사를 만나보세요

개교 100년의 역사

창원초등학교

학교개관 창원초등학교

1경남의 사립학교1)

갑오개혁 이후 신식 학제에 의해 공립학교들도 설립되었지만 사립학교들도 세워지고 있었다. 사립학교는 공립학교에 앞서 1880년대부터 설립되기 시작하지만 1906년 이후 크게 늘어났다. 초창기 사립학교들 가운데는 선교사들이 세운 미션스쿨이 많았지만 1906년 이후에 세워진 학교들 가운데는 조선인들이 세운 학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조선인들이 이렇게 사립학교의 설립에 발 벗고 나선 것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 때문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국권의 위기가 눈앞에 닥쳐오자 이러한 위태로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국권 회복 운동이 다각도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국권 회복 운동 가운데 하나가 실력 양성을 통해 국권 회복을 도모한 이른바 애국 계몽 운동 이었다. 그리고 애국 계몽 운동의 운동 방략 가운데 하나가 교육을 통한 국권 회복 운동 즉 신교육 구국 운동이었다.

1910년 8월 기준 경남의 학교 수는 모두 111개이며 이 가운데 관·공립학교는 13개 교이고 사립학교는 98개 교다. 이 사립학교들 대부분 1906년 이후 학교 설립 운동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1906년 이후 학교 설립 운동의 중심지는 평남, 평북, 황해, 함남 등 북한지방이었다. 하지만 삼남지방 가운데에서는 경남의 학교 설립 운동이 상대적으로 활발하여 경북에 이어서 2위를 차지하다.

1910년 5월까지 인가된 사립학교의 규모를 살펴보면 학교의 종류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전국적으로는 사립학교의 총수는 2,250개인데 이 가운데 보통학교는 16개, 고등학교는 2개, 실업학교는 7개이며 각종학교가 1,402개로 가장 많다. 다음으로 종교 학교가 823개이다.

보통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실업학교는 당시 학제에 따른 학교로 인정된 학교들 이다. 그 외 각종 학교는 이러한 인정을 받지 못한 학교들이다. 따라서 졸업생들도 당시 학제에 따른 학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종교 학교의 경우 대부분 미션스쿨인데 이들 학교들도 종교 교육 문제 때문에 학제에 따른 학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 설립된 사립학교들은 대부분 학제의 바깥에 놓여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경남에 설립된 104개의 사립학교 가운데 보통학교는 3곳에 지나지 않았고 고등학교는 한 곳도 없으며 실업학교는 한 곳이었다. 학제의 인정을 받은 학교는 4곳에 불과한 것이다.


2창흥학교 ‧ 창원공립보통학교 ‧ 창원초등학교

마산이 개항하면서 창원항공립소학교가 세워지고 창원 구읍에는 이와 별도로 사립학교가 설립되었다. 1907년 11월 25일 창원 구읍에서 문을 연 창흥학교(昌興學校)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이 학교의 교장은 김진기(金鎭基), 교감은 조희정(曹喜正)과 신태현(申泰鉉)이 맡았다. 한문교사는 김병호(金炳晧)으며 일어교사는 김일(金永逸)이었다. 이 학교는 1909년 6월 「보통학교령」에 따른 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아 창흥보통학교가 되었다. 창흥보통학교는 1910년 4월 12일 졸업식을 거행하는데 이 무렵 조희정이 교장으로 승진하였으며 정기홍(鄭基洪)이 교감을 맡았다. 조희정은 1909년 4월 29일 창원향교의 직원으로 임명된 사실이 있으므로 이 학교가 창원향교와 긴한 관계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학교는 1910년대 들어서 경영난을 겪다가 1915년 4월 1일 창원공립보통학교로 승격되었다. 현재 창원초등학교의 전신이다.

창원초등학교는 현재까지 총 42명의 교장(현 42대 성경은)이 역임하였고, 제103회 졸업(2019.2.19.)까지 총 21,25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 제15회 졸업사진(1931년)
  • 졸업증서(1933년)
  • 제56회 졸업식(1972년)
  • 학생회장 선거(1974년)

1) 참고문헌 : 경상남도교육청. 경남교육70년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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