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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교육의 역사를 만나보세요

개교 100년의 역사

창원상남초등학교

학교개관 창원상남초등학교

1숭광학교

숭광학교는 1908년(융희 2년) 10월 12일에 창원군 상남면 용지리에서 출범하였다. 학교 설립 기금은 보사계(補社契)가 중심이 되었다. 보사계는 창원군 상남면 퇴촌리에 거주하던 안두철(安斗喆)의 거금 희사가 뿌리가 되어 면유화(面有化)한 것이었다. 나라가 일본에 빼앗기기 직전 풍전등화 같은 시기에, 지방 유지들이 지방민을 계몽하고 조국 존망의 위기에서 자주 독립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숭광학교를 설립하였다.

숭광학교의 족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대한제국 순종황제가 1909년 1월에 마산을 순행했을 때, 이를 봉영(奉迎)한 학교의 하나로 이름을 올렸고, 마산사립창신학교에서 1921년 10월 14일 주최한 대운동회에 참석해 이름을 떨쳤으며, 1919년 4월 29일에는 사파정시장 인근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여 경찰의 요감시 학교가 되기도 했다. 1922년 7월에 남면공립보통학교(지금의 본교)로 이름을 바꿀 때까지 11회에 걸친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의열단 독립운동가인 6회 졸업생 배중세(裵重世, 1895~1944) 등 걸출한 인물이 많았다.

그러나 출범할 당시의 의욕과는 달리,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은 데다 학생들이 삼일만세운동에 가담하여 왜경의 감시를 받는 등 2중고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에 설립자, 학교장, 학부모들은 관계 당국에 학교의 공립화를 건의하기 시작했다. 1922년 7월에 마침내 그 뜻이 이루어져 숭광학교 학생들은 남면공립보통학교에 편입학하여 이제부터는 이 이름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다. 옛 숭광학교 건물은 강습소로 쓰이게 되었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아 ‘숭광’이라는 이름은 1923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2남면공립보통학교

1922년 4월 10일 공립화의 염원이 결실을 맺어 1년 과정의 공립 남면속수학교(南面速修學校)가 신설되었다. 1922년 5월 1일 남면속수학교 개교를 하였으며 속수학교 1학년이 입학하였다. 1922년 7월 4년제 남면공립보통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숭광학교 4학년생이 공립학교 4학년에 편입학, 숭광학교 3학년생이 공립학교 3학년에 편입학, 숭광학교 2학년생이 공립학교 2학년에 편입학, 숭광학교 1학년생이 공립학교 1학년에 편입학하였다.
1923년 3월 1일 남면공립보통학교로 개칭(4년제)하고 1923년 3월 22일 남면공립보통학교 제1회 졸업식 거행(졸업생 15명)하였으며 졸업생 15명에는 숭광학교 4학년에서 편입학한 학생과 속수학교 1년을 수료한 학생이 섞여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1923년 4월 1일 4년제 남면공립보통학교 신입생 입학하였으며 1927년 4월 1일 남면공립보통학교(6년제)로 인가 받았다.

1938월 4월 1일 상남제일공립심상소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으며, 1941년 4월 1일 상남제일공립국민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1946년 1월 1일 상남공립국민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으며, 1950.6.1. 상남국민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6·25 전쟁 중이던 1950.7.29.~1951.10.24. 군대 주둔으로 인해 비품 및 시설이 파괴·분실되기도 하였다.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개칭으로 마산시 편입, 마산남국민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으며 1980년 9월 1일 창원상남국민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1988년 12월 20일 사파정동 1048번지(현 성산구 토월로 140)로 신축 이전하였다.

2024년 10월 3일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였으며, 현재까지 총 28명의 교장(현 29대 이수봉)이 역임하였고, 제102회 졸업(2025. 2. 12.)까지 총 19,67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 화단 정비 활동(1976년)
  • 전교어린이회 선거개표(1989년)
  • 건전가요 부르기대회(19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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